( notes)
Texts
(2024.12)
BUDDING
긴 복도의 끝에는 파란 하늘이 보이는 작은 창문이 있었다. 내려다 본 방의 바닥에는 동그란 초록색 카페트가 깔려있었고, 창문 너머로 눈 내리는 회청빛 하늘과 주황빛 노을을 바라보며 그 바로 아래에 서서 올려다 봤던 하늘의 모습을 떠올린다. 올려다 본 불꽃놀이의 불꽃은 반짝거리면서 내게 가까워지지만 그마저도 가늠이 되지 않는 높이에서 사라지고 만다. 얼굴로 차갑게 떨어지는 눈도, 내가 그것을 소중히 간직하고 싶기도 전에 따뜻한 피부의 온기로 녹아내린다. 멀리서 발광하던 작은 점은 사실 어떤 화약이 폭발하는 순간이고, 텅 빈 하늘을 하얗게 채우던 작은 점은 사실은 어떤 물 분자의 결정체이다. 수 많은 화약과 눈송이를 목격하는 나의 위치와 그들의 모습은 매 분 매 초 달라지고 이건 절대 한 순간도 같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멀리까지 뻗은 복도의 끝이나 작게 보이는 계단의 끝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아주 조금 움직이면, 원래의 시선에서 아주 살짝 벗어나면, 공간을 이루던 선의 각도와 면의 모양은 너무 빠르게 변해버려서 아주 다른 것이, 다르게 느껴지는 공간이 된다. 역시 단 일 밀리미터도 같은 것이 없다 (그런데 원숭이 인형의 원숭이는 손으로 얼굴을 쥐어 짜도, 엎어져도, 나한테 깔려 눌려도 늘 웃고있었다). 어쨌든 그 세밀한 풍경은 내가 나를 둘러싼 사방의 면 중 어느 것에 가까워지느냐에 따라 계속해서 변한다. 그리고 나는 기억 속에서 서있거나 누워있거나 앉아있었던 복도, 방 안, 계단 위에서 내가 네 개의 면 중 어디에 가까웠는지를 안다. 귀신이 나올 것 같아서 걸어가기를 주저하던 길게 뻗은 복도의 기억은 하나의 점으로 모여드는 선들로, 선들이 이어낸 면들의 모양으로, 창문 끝에서 밀려오던 푸른 빛이 섞이던 벽과 바닥의 색으로 만들어졌다. 대략 몇 도의 각도를 가진 선, 대략 어떤 색을 가진 면의 대략적인 크기. 공간은 그 짧은 순간의 모습을 번역한 수치와 글자로 머릿속에 기억된다.
캔버스를 마주하고 내가 기억하는 쭉 뻗은 선을 기억 속 바로 그 각도로 긋기 위해서, 붓을 따라가면서 위아래와 양 옆으로 움직일때, 내 기억은 오로지 하나였지만, 화면을 앞에 둔 나의 위치에 따라, 시작점에서 캔버스를 바라보며 그은 각도와 끝지점에서 긋고 만 각도가 계속 달라지고 휘어진다. 캔버스에서 몇 걸음 뒤로 떨어져서 다시 정확한 각도를 확인하고, 다시 캔버스에 가까워진 다음, 다시 붓을 따라가면, 이번에도 조금 전과 다른 각도의 선이 그어진다. 내가 기억하는 공간을 이루고 있던 정확한 각도의 선을 그으려고 노력하지만, 계속해서 화면에 붙은 채로 평행하게 내 몸보다 큰 화면 앞을 아주 조금씩 움직이면서 팔 끝의 붓을 따라다니는 한 그것은 성취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가만히 있을때의 기억은 왔다갔다 움직이면서 그려진다. 동그란 카페트를 기억하기 위해 동그랗게 돌려대는 팔은 움직일때마다 계속해서 새로운 동그라미를 남긴다. 기억 속 그 곡률을 그려내기 위해 계속 생겨나는, 그어지다 만 동그라미가 화면에 남는다. 팔은 계속 돌아가고, 나는 그 동그라미가 기억 속 동그라미가 맞는지 계속 앞으로 뒤로 왔다갔다 움직인다. 다시 보고싶었던 그 공간은 내가 만들어내는 평면 위에서, 이렇게 공간은 없고 오로지 선의 각도와 면의 크기와 색의 집합이 된 그림이 된다. 그렇게 그려지면서 쌓이는 물감의 겹은 매 순간 분화되었다가, 겹의 여러 면이 하나가 된 채로 정지한다. 설산을 바라보던 창문 앞에서, 바람 한 톨 새지 않게 꾹 닫힌 창의 틀을 바라보면서, 이 창틀은 기성품이라 이렇게 여러 홈이 유격없이 딱 맞게 닫힐 수 있을까 싶었는데, 그 창틀을 그리겠다고 붓질을 하다보면 기성품의 단단하고 차가운 창틀은 없고 그냥 부들거리는 선들을 차곡 덧그린 모양새다. 내 기억은 그렇게 빠른 순간에 사라진다. 그림을 끝맺을 땐 처음의 공간은 없다. 화면은 그렇게 출아한다. 잘못 그은 선과 기억과 닮게 그려진 선이 뒤섞여 남는다. 잘못 그었던 선은 더해져서 새로운 면의 모양을 만든다. 붓질이 더해지고 시간이 쌓이면서, 면은 나눠지고, 선은 여러 겹이 되고, 물감은 이미 칠해졌던 것과 섞여 다른 색이 된다. 그렇게 하나의 기억에서 시작했다가 끝 맺어진 화면은 ‘이건 어떤 풍경, 어떤 공간, 어떤 대상이다’라고 말하기에는, 기억을 투영해서 그 이야기를 들려주기에도 너무 멀어졌다. 다시 내 이야기에 대응하는 어떤 이미지로 여겨버리는 건 너무 주제넘은 짓이다.
닿을 수 없이 뻗어있는 긴 복도를 그리며, 나는, 불러온 환영의 깊이를 백 년 전과 같은 마음으로 믿고 있는 것이라기엔, 그건 시간의 겹이, 형이 되다가 말아버린 여러 겹의 선과 색이 부정한다. 고전의 투시점은 작은 창문으로, 작게 뜬 해로 그려져 있지만, 그것은 언제나 그렇듯 그저 떠 있을 뿐이고, 난 그저 닮아지기 위해 노력한다. 그 닮아짐은 닮아지려고 노력하는 매
순간 쌓이는 물감의 겹으로, 죄악으로, 계속 굴러떨어지는 돌멩이처럼, 계속 미끄러져 떨어진다. 그러니까
나는, 미끄러질 것이 확실한 방향으로 계속 돌을 굴리고 있다.
활자로 전개되며 제거된 기억의 일부는, 그 기억을 닮기 위해 캔버스에 계속해서 덧그려진 면과 선으로 새롭게 뭉쳐지고, 초점 잡히지 못한 채로 서로 결합한다. 원숭이는 움직이는 화면에서 혼자 고정된 채로 화면 앞의 나를 마주본다. 화면은 흐릿하거나 뚜렷하고, 그 안에서 여러 개로 보이고 서로 섞이기 때문에 새로운 이야기는 계속해서 생겨난다. 그림에서 형이 해체되어서 너덜거리게 된 어떤 것은 그래서 완전해진다. 그래서 영원히 멈춰 있을 풍경은 실은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움직이고 있는 그림의 거리는 나와 좁혀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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